마태복음14:22~33 (물 위로 걸으시다)
31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을 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이때가 언제인가?
예수님을 따르는 열두 제자와 함께
수 많은 무리들에게 오병이어 에 기적을 보이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들을 분리 하시고 산으로 기도 하려 가시며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갈리리 호수 건너로 가고 있는 중에 일어난 사건이 아닌가?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제자들과 복음서에서 주님을 만나는 제자들과
어떤 차이점을 볼 수 있으며 나에 믿음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 하는가?
육신을 입고 계시는 하나님(예수님)을 따를 때와
성령으로 오신 성령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육신으로 계시는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육신의 욕망을 채워주는 빵을 얻기 위해 주님을 따랐다면
보혜사 성령으로 오신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한 차원 높은 영적이 세상에서 천국에 소망을 바라보지 않았는가?
육신의 욕망에 빵을 얻기 위해 따르는 제자들은
육신의 고통과 고난이 두려웠지만
육신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알게 되고
천국에 소망을 바라보게 된 제자들은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로 갈수 있는 길을 볼 수 있지 않았는가?
그 소망이 있기에 육신의 옷을 벗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지 않았는가?
빵으로 살아가는 육신의 욕망이 인생의 끝이라면
사후세계에 소망이 없고 또 모른다면 그 육신을 벗는 것이 얼마나 두렵겠는가?
22절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라 하셨으니
다시 만난다는 약속을 믿고 먼저 간 것이 아닌가?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는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기대감으로 채워져 있었을까?
이제는 그들을 세상 고난과 고통 속에서 구원하실 메시야를 만났으니
이세상 살아가는 동안 멸시천대는 끝나고 행복한날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는가?
보이는 현상만 바라보고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주시는 대상으로 믿고 기대 했던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할 때 도망갈수 밖에 없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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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인생에 배에는 어떤 주님이 찾아 오셨는가?
육신의 옷을 입고 계시는 주님께서
내 육신의 욕망을 채워 주시기 위해 나를 찾으시고 부르시며 말씀 하시는가?
아니면 부활의 주로 오신 성령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가?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나는 지금 내가 바라고 원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을 원하고 있는가?
육신의 욕망을 채워주시는 내 삶의 빵을 해결해주실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영생의 길로 인도 하실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
나는 욕심이 많아 둘 다 원하는 모습을 부인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마태6:33 그른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모든 것이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마태7:7~12 (구하라 문을 두드리라)
하나님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아닌가?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육신의 욕망을 위해 빵을 구하는 말씀일까?
죄와 사망가운데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나라 법을 지킬 수 있는 믿음으로 지혜를 구할 때
창조주 하나님께서 육신의 삶의 필요한 것은 함께 채워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닌가?
이 말씀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의 확신이 나에게는 있는가?
나는 할 수 없으나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주님을 믿을 때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나를 의에 길로 인도 하실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늘에서 무엇이 떨어지듯
나에게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또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이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히브리서11 (믿음)
1절 믿음은 바라는 것 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나에 인생길에 아픔이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 아픔은 육신의 아픔을 통해
잠자는 내 영혼이 깨어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회초리였고
내 영혼이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통로가 되였음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육신의 아픔이 있을 때
내 영혼이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위치를 깨닫지 못하고 발부둥칠 때
더 큰 아픔과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는 것을 겪어온 삶이 아니었던가?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을 하였느냐”
나에게는 배드로와 같은 작은 믿음이라도 내게 있어
주님께서 부르실 때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는가?
나는 내가 정성을 다해 내가 쌓아 올린 나의 작은 성을…..
내 인생 길에서 내 것이라고. 내가 내 손으로 만든 나에 인생의 배…..
내가 만든 안전한 배라고 믿고 있는 배,
내가 쌓아 올린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
내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할 수 있었다면
그 고난의 길이…. 그 아픔이…. 짧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나는 나의 인생길에서
아주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는 쉽게 나를 포기하고 주님을 찾았지만
작은 수렁, 작은 파도가 칠 때는
나는 내 생각을 내려 놓고 주님을 찾기 보다는
내 방식대로 내 성을 지키기 위해 발부둥치며 살았음도 부인할 수가 없다
왜일까?
육신의 욕망이 나를 사로 잡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 온다 해도
나에 작은 자존심, 내 자아 속에 갇혀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깨어 있어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은혜를 누리는 자는
작은 아픔에도… 작은 풍랑에도 주님을 뜻을 묻는 자일 것이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아닐까?
깨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큰 풍랑이 큰 파도가 온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담대히 이길 수 있는 지혜를 주실 것이다
어떠한 불의 앞에서도 담대 할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지 않을까?
“마태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나님 아버지~~ 부족 종에게 믿음의 복을 허락 하시사
늘 깨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시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게 하시며
그 뜻 안에서 순종 할 수 있는 믿음의 종이 되게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 합니다 -아멘 -
2019/7/20 - 김 성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