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16:4~22 “밤의 유혹에 빠진 태양” (기생 드릴라에게 빠진 나실인 삼손)
히브리 민족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노예의 삶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
그 백성의 선조들에게 약속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는데
그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참소망의 은혜와 사랑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소견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자신의 마음에 뜻을 따라 자신의 삶의 편의 따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자신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애굽 땅에서 종살이했던 시절에서 구원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들어 가기까지 시련에 땅 광야를 지나갈 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에게 이적과 기적을 보이시며
하나님을 하나님 됨을 알게 하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 풍요로운 땅에 들어 갔을 때
그 풍요로움에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는 죄를 범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에 약속의 말을 지키라고 신신당부하며 가르쳤는데
그 백성이 육신의 욕망을 쫓아 살아갈 때
하나님의 복음은 세상 어둠에 묻혀, 죄악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그들의 삶속에서
그들의 마음에 심어졌던
하나님의 복음이 사라진 그 마음 밭에
어둠의 세상,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에 미혹 되여 세상 욕망으로 그득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은 사라지게 되고 세상 물질 문명에 지배를 받는 세상,
다시 세상 죄악의 노예가 되는 죄악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지 않는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일깨워 주기위해
많은 사사들을 보냈으나 자신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땅에 보냄을 받은 ‘나실인’
사사기에 나오는 마지막 사사 삼손까지도
세상 미혹에 넘어가 버리는 상황에 이르고 있지 않는가?
계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아있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하나님 앞에 물어 기로 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가 없는 하나님의 백성
자신의 마음에 자신의 하나님(신상 에봇)을 만들고
자신의 소견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자
그들 자신은 살아 있다고 자부하고 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라볼 때 실상은 죽은 생명을 가진 자들이 아닌가?
삼손 또한 자신이 소견대로 살아온 그 삶은
본인 자신은 거침없이 살아가는 삶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 영은 죽은 자가 아니었을까?
젖과 끌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그 땅에 신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쟁취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라 하셨는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놓고 누리는 풍요로움에 미혹이 되여
육신이 수고하지 아니하고 안락함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곧 불 순종의 길, 죄악의 길, 멸망의 길로 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오늘 주일 말씀을 듣고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 삶은 어떻게 느껴지는가?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에 잠겨 본다.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에 피로 구속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믿는 믿음안에서
이 세상 삶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구했던 광야 같은 인생길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광야를 거처 가나안에 들어가까지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발자국도 걸어갈 수 없었던 그들과 무엇이 달랐는가?
나에게는 육신의 건강도 없어요,
세상에서 믿을 백도 없어요,
가진 물질도 없어요.
혈혈단신 냉혹한 세상 전쟁터에 버려진 것 같은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목이 마르면 물을 찾듯이
내가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복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나에 모습을 생각해 본다.
그 시절 눈으로 볼 수 없었고 느낄 수 없었으나
그때를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묵묵히 따라가는 나의 삶을 인도 하셨던 나에 하나님……..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한세대를 지나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자신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것 처럼…..
내 삶이 당장에 어려움이 해결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속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기보다는
육신의 고달품이 없는 상황에서, 내 영혼이 깨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삶이 아니라
이 대로가 좋사오니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로 한발, 세상으로 한발 걸쳐 놓고
안주하는 삶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
내 인생의 마지막길에 삼손과 같지 않다는 보장은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내 삶이 육신의 욕망을 따라 안주하는 삶을 살아 갈 때
세상 어둠이 소리 없이 다가오며, 내 영에 눈은 가리워지게 되고
내 삶은 다음날에 참 소망이 있는 삶이 아니라
내 마음에는 내가 원하는 “‘에봇’의 하나님을 만들고” 기도하는 나에 모습이
내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애타하는 모습이
삼손이 드릴라에게 얻고자 했던 육신의 욕망에 영에 눈이 어두워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는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내 심령이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지 아니하고
그 마음의 고통을 안고 시름하며 살아가는 나에 모습이 삼손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삼손이 마지막 죽음을 눈앞에 두고
분연히 떨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었을까?
나는 생각 한다
성령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두드리고 계시기 때문에
이렇게 나마 생각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부터 라도
광야 같은 나에 인생길에서 고난의 길이 연속되고 있었던 그때,
한치 앞을 볼 수 없었던 그때,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던 그때,
나는 그때에 보이지 않는 손길로 나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던
나에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내 생각 내기준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믿음의 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 믿음이 회복될 때
내가 육신의 옷을 벗는 그날에
내 입술로 기쁨의 찬송을 부르며 영광의 주님을 대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삶은
그 영혼이 멸망의 길을 달려 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거창하게 시작하여(출애굽 하여) 고난의 강을 건너 화려하게 가나안에 입성을 하였으나
그 땅에서 하나님의 복음의 빛을 잃어가는 이스라엘
그들이 걸어가는 길이 결국에는 멸망에 길로 들어가고 있으나
진작 본인들 자신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슬픈 일이 아니었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입고(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감격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나
그 세상에서 성도로써 빛을 잃어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내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고 물어본다
(나는 자신 있게 아니라고 답할 수 없는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가 된 내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삶은
장님이 지뢰밭을 겁 없이 걸어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 성도가 된 나는……….
어제도 오늘도 이만큼 왔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영적 맹인이 되여 요행을 바라고 살아가는 삶은 결코 살지 말아야 할 것이라
다짐을 해 본다
사사기에서 주시는 말씀 중에서
성도 된 나에게(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인가?
불순종의 결과는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삶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이 떠나게 되고
하나님의 영이 떠난 자리에는 심판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으며,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자복하고 회개하는 심령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이, 하나님의 사랑에 손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전10:12 “그른 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가나안을 정복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싸우시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가셨으나
육신의 눈으로 보기 좋은 것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해 갈 때
그들 자신은 누구 때문에 서 있는 줄을 모르고
교만에 빠져 있는 것은
멸망에 길을 자초하는 것이 아닌가?
바울사도의 고백처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고전15:10)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고백속에, (고전15:31)
육신의 욕망이 죽어야 살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고 그 길을 걸어간 바울사도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가 된 나는(우리들은) 나를 위해 죽으시고
그 십자가 보혈에 은혜로 나를 살리신 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내 십자가을 내가 지고 주님을 따라 갈수 있는 길은(요10:38)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내 안에 충만할 때
에스더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담대한 믿음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에스더4:16)
그르므로 성도 된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깨어 기도하며 내 영혼이 깨어 있을 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불 순종의 길을 가는 것과 같은 답습을 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종에 영혼이 늘 깨어 있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할 때
종에게 믿음의 복을 더 하시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망각하는 종이 되지 않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림니다 - 아 멘 –
2024/3/12 - 김 성 하 -